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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일의 건강칼럼] 혈액순환장애? 그것 때문이 아닌데…

2013년 12월 건강다이제스트 희망호 70p

【건강다이제스트 | 서울메디칼랩 김형일 의학박사】

‘혈액순환장애’라는 말이 지나치게 유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 년 동안 팔려나가는 혈액순환 개선제 판매 총액은 아마 국방비보다 더 많을 것이다. 혈액순환제를 엄청나게 많이 소모하고도 그런 질병들이 치료되지 못하는 이유는 정말 무엇일까?

대답은 명료하다. 첫째, 처음부터 혈액순환장애에 의한 질병이 아니었거나, 둘째, 혈액순환제의 약효가 없는 것이거나, 셋째, 이 두 가지 모두 정답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몇 주 전에 운수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할아버지 한 분이 힘센 군인아저씨에게 이끌려 오셨다. 요새 여기저기가 다 아팠던 할아버지는 그 이유가 혈액순환장애 때문인 것 같았다. 용하다는 의원에 갔더니 거기서도 “혈액순환이 잘 안 돼 기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약을 겁나게 지어주었다. 그것을 먹고 있는 중이었는데, 군대에서 휴가 나온 손자가 할아버지를 억지로 업고서 병원에 온 경우였다.

진찰을 해보니 할아버지는 당뇨병과 통풍이 이미 오래전부터 와 있었다. 그 부작용으로 신경장애가 와서 말단의 감각신경이 이미 둔화되어 있었고, 시력과 청력도 떨어지고 이미 그 후유증은 전신에 퍼져 있었다. 그 후 할아버지는 큰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하였으나 일 년을 못 넘기고 돌아가셨다.

물론 당뇨병도 혈액순환장애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혈압이든, 지방간이든, 관절염이든, 갑상선질환이든, 성기능장애든… 그 무슨 병인들 혈액순환장애가 아닌 병이 따로 있겠는가!

손발이 차거나 저려도 혈액순환장애니 약 먹어 보시오, 어깨가 쑤시고 목이 뻣뻣해도 혈액순환장애니 약 먹으시오, 기억력이나 성기능이 떨어져도 혈액순환장애요, 시력이나 청력이 떨어져도, 배가 차고 아파도 혈액순환장애요…. 정말 한심할 노릇이다.

요새 혈액순환장애가 전혀 없다거나 더 적어졌다는 주장은 절대 아니다. 최근에는 혈관이 막혀서 그 이하 장기가 괴사(壞死 necrosis : 죽어들어감)되는 고셔병(Gaucher’s disease)이 훨씬 더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혈액순환장애라기보다는 흡연이나 인공화합물에 의한 혈관수축의 반복과 지속적인 혈류량 감소가 가장 큰 원인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자기 혈관이 막힌 줄 모르고, 이 약 저 약을 오랫동안 남용하다가 뒤늦게야 그것이 밝혀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신체 성분 과부족 현상은 혈액순환 개선제로 치료되지 않으며, CT나 MRI로도 진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증상이든지 혈액순환장애라고 두루뭉술 진단을 붙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것을 치료표적으로 봐서는 안 될 일이다. 반드시 그 원인질환을 먼저 찾고 나서 선행원인에 맞는 치료방법을 선택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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