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관동의대 명지병원 이비인후과 송미현 교수】
지난 9월 9일은 귀의 날이었다. 갓난아기 시절 어머니 자장가 소리부터 재롱을 떠는 손자들 노랫소리까지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우리의 귀. 세월은 야속하게 이 작디작은 귀도 피해 가지 않는다. 노인성 난청이 대표적이다. 노인 딱지를 붙이기 무섭게 수화기 너머 자식 목소리도, 뒤따라오는 자동차 엔진 소리도 어느 순간 아득히 먼 소리가 되어버리기 일쑤다. 이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소리를 증폭시켜서 잘 들리게 하는 보청기다. 그러나 많은 노인은 보청기를 고마운 기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꾸 귀에서 소리가 나고, 잡음이 들리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차라리 안 들리는 게 낫다고 한다. 너도나도 갖고 싶었던 보청기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한 보청기의 오명을 벗기고 귀에 맞는 보청기 선택법을 알아본다.
보청기 사기 전 정확한 검사 필수!
노인들은 대부분 귀가 들리지 않으면 보청기 판매점부터 찾는다. 귀에 병이 생겼다면 병원에 가겠지만 나이가 들면 귀가 점점 나빠진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정도로 당연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관동의대 이비인후과 송미현 교수는 “노인성 난청으로 생각되더라도 이비인후과에서 가능한 한 빨리 정확한 검사를 받는 편이 좋다.”고 설명한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원인과 정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다. 안 들린다고 해서 무조건 보청기가 필요한 노인성 난청이 아니다. 중이염을 앓고 있거나 귀지가 귓구멍을 막고 있어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노인성 난청이 맞아도 보청기를 하려면 검사를 통해 난청 정도를 확인해야 한다. 병원에서 하는 기본 청력검사는 보통 두 가지다. 주파수별 순음 청력 수준을 알 수 있는 ▶순음청력검사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단어를 검사에 사용하는 ▶문장언어검사를 한다. 검사 결과 보청기가 필요할 정도로 난청이 심하면 의사에게 검사 결과와 보청기 처방 등을 받아 보청기를 구입하면 된다.
이때 순음청력검사에서 70dB 이하 소리는 들리지 않거나 문장언어검사에서 말소리를 구분하는 능력이 50%에 미치지 못한다면 보청기로는 큰 효과를 볼 수 없을 만큼 난청이 진행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보청기보다는 인공와우이식술 같은 수술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보청기 구입 후 반드시 조절기간 필요!
안경을 맞추면 안경을 끼는 순간 잘 보인다. 그러나 보청기는 그렇지 않다. 보청기를 처음 끼면 자신의 목소리뿐 아니라 모든 소리가 크게 들리고 불편하다. 보통 2~3개월의 조절 기간이 지나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송미현 교수는 “보청기를 껴서 불편한 점이 있으면 반드시 조절을 해야 하고 적응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보청기는 한 번 사면 고장 날 때까지 그냥 쓰는 게 아니다. 가급적 보청기를 구입한 곳이나 병원에 가서 청력 변화 여부를 확인하고 주파수의 높낮이 조절, 보청기 모양 수정 등 불편한 상황에 맞춰 보청기를 조절받아야 한다.
보청기에서 나는 ‘삐’ 소리도 그냥 넘기지 말아야 한다. 보청기를 귀에서 빼거나 낄 때‘삐’소리가 나는 것은 괜찮다. 단 가만히 있거나 입을 움직인 후에 소리가 난다면 점검을 해봐야 한다. 보통 보청기 안에서 증폭된 소리가 밖으로 빠져나올 때 ‘삐’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보청기를 더 깊이 넣어도 여전히 소리가 난다면 보청기가 귀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는 보청기 모양이나 주파수를 조절해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보청기에 대한 잘못된 상식
편리한 기계지만 보청기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다. 애물단지라는 소문이 무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청기는 자신에게 맞는 것만 사용하면 제 2의 귀로서 역할을 충실히 한다. 보청기의 억울한 불명예를 벗겨본다.
● 보청기를 끼면 귀가 나빠진다?
보청기를 안 끼면 귀가 더 빨리 나빠진다고 보는 것이 맞다. 물론 보청기를 끼면 귀가 좋아지지는 않지만 난청이 진행되는 것을 어느 정도 예방한다. 안 쓰는 기계에 녹이 슬 듯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청각 세포와 청각 신경이 퇴화해서 귀는 점점 더 안 들리게 된다. 보청기로 계속 소리를 전달해 청각 세포와 청각 신경이 일하게 해야 한다.
● 보청기는 비싼 것이 좋다?
귀가 나쁠수록 비싼 보청기를 사야 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 보청기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성능, 크기, 부가 기능 등이다. 보청기 종류는 크기가 작은 순서대로 고막형, 외이도형, 귓속형, 귀걸이형으로 나눈다. 크기가 큰 보청기가 가격이 저렴하고, 많은 기능을 작은 공간에 넣어야 하는 작은 보청기는 비싼 편이다. 그러나 크기가 작으면 큰 것에 비해 소리를 출력할 수 있는 능력도 한계가 있다. 또 노안이 시작됐다면 너무 작은 보청기는 사용하기 불편할 수 있다. 크기가 작을수록 배터리를 갈아 끼우거나 전원을 끄는 보청기 조작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난청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됐다면 귀걸이형 보청기 중 하나인 개방형 보청기가 효과적이다. 노인성 난청은 보통 고주파수 소리부터 안 들리는데, 개방형 보청기는 이 고주파수 소리를 잘 들리게 한다. 일반 귀걸이형 보청기에 비해 크기가 작아서 잘 안 보이며 귓구멍을 막지 않기 때문에 본인 목소리나 씹는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 보청기는 시끄럽다?
보청기를 끼었을 때 소음 때문에 불편하다면 정상 소리보다 큰소리로 증폭시키도록 조작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보청기 회사나 대리점에 가서 소리를 조절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래도 잡음이 많이 들려서 불편하다면 말소리는 크게 들리고 잡음은 증폭시키지 않는 기능을 갖춘 보청기를 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양쪽 귀가 모두 난청인 경우 양쪽 귀에 보청기를 끼면 소음 환경에서도 말소리를 보다 정확하게 들을 수 있다.
보청기가 필요한 내 청력 상태는?
65세가 넘으면 20~30%는 노인성 난청이 시작된다. 보청기를 사용해야 하는 절대 기준은 없으며 안 들려서 불편하면 보청기를 쓰는 것이 좋다. 보통 순음청력검사 결과가 40dB 이상인 경우 일상생활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라면 난청을 가볍게 넘기지 말고 검사를 통해 보청기를 하는 것이 이롭다.
보청기는 나이가 많은 노인이 쓴다는 인식이 강하다. 꼭 필요하지만 늙어 보이는 데 한몫을 한다는 이유로 외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 안 들리는 귀를 방치한다면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 귀가 들리지 않으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단절되면서 외롭고, 우울해지며 사회생활이 어려워지는 등 치매에 걸리기 쉬운 환경이 되기도 한다. 노인성 난청은 그냥 두면 좋아지지 않고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송미현 교수는 “혹시 보청기를 샀다가 불편하거나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끼지 않는다면 귀에 맞도록 조절을 해서 다시 끼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송미현 교수는 관동의대 명지병원에서 중이질환, 난청, 이명, 어지럼증을 전문으로 진료한다.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임상연구강사를 거쳤으며, 대한이비인후과학회, 대한이과학회, 대한청각학회에서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