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박현아 기자】
【도움말 | 순천향대 부천병원 대장항문과 신응진 교수】
경기도 분당신도시에 사는 곽세용(49) 씨는 아침마다 책을 한 권 들고 화장실을 가는 것이 오래 된 습관이었다. 다독가도 아닌데 배변 때 독서를 해야 하는 이상한 습관 탓에 지난 겨울 치질 진단을 받았다. 곽 씨는 “연말에 술자리를 자주 하다 보니 증상이 심해지더라.”며 “항문병이 생겨 고생 좀 했다.”며 씁쓸해했다. 치질 증상이 있는 사람은 겨울철 항문병 관리에 각별히 더 신경 써야 한다. 항문병은 보통 겨울철에 심해지기 때문이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대장항문과 신응진 교수는 “날씨가 추워지면 활동량과 운동량이 적어져 혈액순환이 좋아지지 않는다. 연말연시가 낀 겨울철에 음주 횟수가 많아지는 것도 원인”이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
치질, 알아야 고친다!
우리나라 치질 환자는 85만 명에 이른다(2012년 기준). 세부 질환별로 보면 전체 치질 환자 10명 중 8명은 치핵 환자다. 다음이 치열, 치루 순이다. 40대 치질 환자가 가장 많고 30대, 50대, 20대 순이다.?
치핵은 남성과 여성 환자 수가 비슷하지만 치열은 여성이 남성보다 약간 많다. 이와 달리 치루질환은 남성이 10명 중 8명꼴로 압도적으로 많다. 다소 까다롭지만 치질 질환을 세부적으로 알아보자.?
치핵=항문이나 하부 직장의 정맥총이 커지고 늘어나 덩어리를 형성한 상태. 한자어로 ‘치(痔)’라는 말은 ‘항문의 질병’,‘핵(核)’은 ‘덩어리’를 뜻한다.
치열=항문의 피부와 점막 사이가 헐어서 문드러지거나 궤양, 파열 등이 생긴 상태.?
치루=항문과 직장 주위 조직에 생긴 염증이 농양으로 발전해 밖으로 터져 나온 상태. 항문관이나 직장과 항문 주위 피부 사이에 누공이 생긴다.?
쉽게 말해 치질은 항문 주위 혈관이 확장돼 나타나는 질환이다. 항문 혈관이 확장되면 주변 조직이 부풀어진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점막이 덩어리를 형성해 항문 밖으로 돌출한다.
그런데 배변 시 피가 보여도 ‘곧 낫겠지.’하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강심장들이 있다.?
신응진 교수는 “치핵은 대장암의 원인이 아니며 치핵이 심하다고 대장암으로 진행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치핵의 주요 증상이 항문 출혈, 통증이어서 항문 출혈 시 치핵이라고 단순히 생각하고 장기간 방치하면 대장암 같은 큰 병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항문 출혈 ▶통증 ▶변 굵기의 감소 등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면 가까운 대장항문과를 찾아 전문의의 진찰을 받아볼 것을 권한다.?
치질 초기 단계는 생활습관 교정만으로 큰 도움이 된다. 출혈이나 통증이 있다면 일차적으로 약물 치료를 한다. 생활습관 교정과 약물 치료로 호전되지 않으면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치질 덩어리가 튀어 나와 손으로 밀어 넣어야 할 정도로 돌출이 심하거나 빈혈이 생길 정도의 출혈, 참을 수 없는 통증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
치질 예방에 좋은 습관 vs 나쁜 습관
평상시 항문병 예방을 위해 건강한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섬유질과 수분의 양을 늘리고, 과도한 긴장만 풀어줘도 치핵에 대한 압력을 감소시켜 치질 돌출을 예방할 수 있다.?
치질 예방에 좋은 습관은 ▲화장실에서 바로 나오기 ▲배변 후 온수 좌욕 ▲균형 잡힌 식사 습관이다. 이와 반대로 나쁜 습관은 ▲과도한 음주 ▲화장실에서 신문을 다 읽고 나오는 습관 ▲육식 위주의 식단이다.
곽 씨처럼 화장실에서 배변 시 장시간 앉아 있는 것은 치질을 유발하는 가장 나쁜 습관이다. 길어도 5분 이내, 보통 3분 이내 용변을 마치는 것이 좋다. 몸에 신호가 오는데 하던 일을 끝내고 화장실에 가려고 참아선 곤란하다. 변의를 느끼는 즉시 배변하고, 배변 시 과도한 긴장을 피하는 것이 좋다. 규칙적인 배변 습관을 가져야 치질로 고통을 겪지 않는다. 배변 후 온수좌욕을 하면 항문이 청결해지고 혈액순환이 좋아져 항문병을 예방할 수 있다.?
공부나 일 때문에 장시간 의자에 앉아 있는 직업군은 치질 위험군이다. 수험생이나 취업 준비생들도 의자에 오래 앉아 공부하다 항문병이 생길 수 있으므로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공부 중간에 가벼운 운동을 해주는 게 좋다. 반신욕이나 좌욕도 항문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 ?
가벼운 워킹이나 수영은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장운동을 돕기 때문에 치질 예방에 유익한 운동이다. 하지만 항문이나 하체 쪽에 과도한 힘이 가해지는 운동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시간 서 있거나 힘든 등산, 심한 근력 운동 등은 증상을 되레 악화시킨다. ??
변비가 생기면 화장실에 오래 앉게 되고 힘을 많이 줘야 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변비를 일으키는 음식을 먹으면 치질 증상이 심해진다. 신응진 교수는 “육류 섭취가 많으면 변의 양이 적고 단단해져 배변이 힘들어진다.”며 “육류, 채소, 곡류, 과일 등은 골고루 먹을 것”을 권했다. 커피나 카페인 음료도 장운동에 영향을 미친다. 배변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많이 먹지 말아야 한다.?
치질 궁금증, 문답으로 풀어보자!
?Q=변비가 대장암의 한 증상이다?
?A=맞다. 변비가 대장암의 원인은 아니지만 대장암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항문에서 가까운 직장암은 수지 검사만으로도 진단이 가능하나 손가락이 닿지 않는 부위의 검사는 대장내시경 검사를 해야만 알 수가 있다. 갑자기 변비가 심해졌다면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
변비를 예방하려면 섬유질을 충분히 먹고, 하루 1.5~2리터가량 충분히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 규칙적으로 배변하는 습관을 들이고, 배변 시 발판 등을 이용해 몸을 더 쪼그리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방법이다. 스트레스와 긴장은 피해야 한다. 복근력 강화를 위해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게 좋다.?
Q=남성 치질 환자가 여성보다 더 많다?
A=맞다.?이유는 음주 때문. 큰 차이는 없지만 남성 환자 비율이 약간 더 높다.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더 자주 술을 마시기 때문이다. 과도한 음주는 치질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지나치게 술을 마시면 간이 비대해지고, 간이 비대해지면 하지쪽 혈액순환이 좋지 않아 치질이나 정맥류 등의 증상이 악화된다.
Q=20대는 여성 치질 환자가 남성보다 더 많다?
A=맞다.?대부분의 연령대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많지만 20대는 확연히 다르다. 70?80대도 여성이 남성보다 약간 많지만 미세한 차이인데 반해 20대는 여성 7만여 명, 남성 6만여 명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약 17% 많다.
20대 인구 10만 명 당 치핵 환자는 여성이 1636명, 남성이 1280명이다. 치열의 경우 50대 이하 연령대에서 모두 여성이 남성보다 많았다. 특히 20대는 남성과 여성의 격차가 크다. 인구 10만 명 치열 환자가 여성(541명)보다 남성(280명)이 두 배 더 많다(국민건강보험공단 분석).
고령, 만성변비, 임신, 하제(설사약), 가족력,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는 습관 등은 치질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은 “20대 여성이 많은 이유는 만성변비, 임신 등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Q=9세 이하 어린이가 변비에 잘 걸린다??
지난해 변비로 진료를 받은 환자 가운데 9세 이하 어린이가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많았다. 아이들의 배변 습관은 초기에 바로잡아줘야 한다. 변을 참는 습관이 있다거나 편식하는 경우 변비가 생겨 변이 굵어지면서 배변 시 항문이 찢어지는 치열 증상이 많이 나타난다. 아이들의 편식 습관을 없애줘야 배변이 편안해진다. ?
신응진 교수는 현재 순천향대 부천병원 진료부장 겸 대장항문과 교수. 일본 대장항문병학회 학술상, 대한내시경복강경학회 우수구연상을 받았다. 대한대장항문학회 이사, 미국 대장항문학회 정회원, 대한암학회 정회원 등으로 있으면서 왕성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