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건강칼럼니스트 문종환】
한 권의 책이 건강마니아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플랜트 패러독스>라고 하는 스티븐 R. 건드리 박사가 저술한 책이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건강상식을 송두리째 뒤엎은 이 책은 인터넷 공간에서 최대의 화제를 낳고 있다. 그 중심물질이 렉틴이라는 것이다. 과연 이 물질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건드리 박사의 주장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지금 세계적 논란거리로 떠오른 렉틴 쇼크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들을 짚어본다.
렉틴은 요주의 물질?
렉틴(Lectin)은 암세포 등 특수한 당 구조를 인식하는 단백질로 항암 및 면역증강 작용이 있어서 항암제의 주성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렉틴이 건드리 박사의 저서 <플랜트 패러독스>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인체에 부정적으로 작용, 건강을 해치는 방향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는 자신의 몸을 실험 대상으로 하여 경험한 여러 사례를 소개하면서 우리가 그동안 건강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먹었던 것들을 먹지 말 것을 권하고 있는 상태다. 먼저 건드리 박사가 주장하고 있는 렉틴이 없는 밥상에 대해서 알아보자.
밥상에서 뺄 것을 권하고 있는 음식들
오이·토마토·호박 등 씨앗이 많은 채소들, 통곡물, 콩과식물, 우유, 가지과 식물, 옥수수와 옥수수를 먹여서 사육하는 동물들에는 렉틴이라는 물질이 다량 함유돼 있으므로 섭취를 제한하거나 섭취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밥상에 더할 것을 권하고 있는 음식들
고구마·유카·타로·순무 등 뿌리식물, 로메인·상추·시금치·바다풀 등의 잎채소, 브로콜리·콜리플라워·양배추·콜라비 등의 십자화과 채소, 그리고 아스파라거스·마늘·셀러리·버섯·양파 등의 식재료들이다.
이런 식재료들은 장내 유익세균의 먹이인 섬유소, 항산화영양소인 폴리페놀·플라보노이드 등이 풍부하다. 아보카도나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는 지방을 대표하는 식재료이다.
그런데 렉틴 식재료들이라 하더라도 렉틴을 감소 혹은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첫째, 콩?감자?토마토 등은 압력솥을 사용하여 음식을 하면 렉틴을 제거할 수 있으며 밀?호밀?보리?귀리는 압력솥으로도 렉틴을 제거할 수 없다는 게 건드리 박사의 주장이다.
둘째, 호박이나 오이, 가지 등의 경우는 껍질을 벗기고 씨를 제거함으로써 렉틴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고 했다.
셋째, 렉틴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서는 도정된 곡물을 먹으라고 했다. 곡물의 겉껍질에는 렉틴이 많고 더군다나 화학농법으로 경작한 벼의 겉껍질에는 비소나 중금속이 함축돼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우리가 건강한 식재료라고 믿었던 통밀?호밀?보리?귀리 등은 먹으면 안 된다. 쌀의 경우는 백미의 형태로 도정하여 섭취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다른 식재료의 경우는 씨와 껍질을 제거하거나 압력솥 등 조리기구를 이용하여 렉틴을 제거 또는 줄여줄 수 있으니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괜찮다는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오늘날 일반화된 화학비료?농약?제초제?성장촉진제 등 화학물질을 이용해서 작물을 재배하는 화학농법은 흙속의 미생물을 반 토막, 혹은 그 이상을 소멸시켜 작물의 미네랄과 유기원소 등 물질의 다양성 대부분을 훼손하므로 보충제를 섭취할 것도 권하고 있다.
특히 사료로 쓰이는 옥수수는 Bt 콘이라는 GMO(유전자 조작) 옥수수인데 이는 스노드롭이라는 꽃에서 뽑아낸 강력한 렉틴 유전자를 주입하여 병충해 방지를 위해 만든 것으로, 렉틴 사료를 먹고 자란 소?돼지?닭 그리고 그것을 먹는 사람에게까지 반응하며 모유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을 접하면서 많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우리의 밥상은 기본적으로 곡류가 주식으로 채소가 부식(반찬)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전통밥상은 보리?밀?기장?수수?콩 등의 잡곡과 콩을 주원료로 한 된장?간장?청국장을 기본으로 하여 다양한 제철 채소로 구성돼 있다.
건드리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전통밥상은 렉틴으로 넘쳐나는 건강하지 못한 밥상이 되는 셈이다. 정말 그럴까?
일방과 상식의 문제
렉틴은 식물 속에 존재하는 아주 작은 비중의 물질 중의 하나다. 렉틴에 대한 글을 읽고 독자들은 각자 다양한 반응과 행동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육식을 즐겨하는 사람들은 “거 봐, 식물의 독이 고기보다 더 안 좋잖아.”라고 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정말이야? 그럼 내가 건강식으로 챙겨먹었던 것들이 모두 독이었단 말이야?”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동안 사례나 경험, 혹은 과학적 검증 결과는 송두리째 잊어버리고 한 권의 책에 매몰돼 허우적거릴 수도 있겠다.
논란이 된 책 <플랜트 패러독스>는 렉틴에 관한 책이다. 우리는 수많은 건강정보를 인터넷이나 책, 혹은 잡지나 신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얻는다. 건강정보의 객관성을 확보하려면 해당 정보를 가공 유통한 저자를 포함한 해당 그룹에 관한 기초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정보를 통해 얻게 될 저자와 유통업자의 이익도 고려의 대상이다.
이것을 지적하는 이유는 의료정보를 포함한 대부분의 건강정보는 이해관계, 즉 글쓴이의 이익을 반영한 정보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플랜트 패러독스>의 글 중 상당부분은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은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렉틴에 관한 일방적인 주장이 우리가 알고 행해왔던 상식적인 내용, 즉 통곡류와 채소, 그리고 전통발효음식이 우리의 건강밥상이라는 내용을 뒤집을 합리적 근거는 될 수 없다.
식물 속의 독성과 약성은 동전의 양면
식물에는 수많은 물질이 있다. 그중에는 약이 되는 성분도 있고 독이 되는 성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특정성분만 끄집어 내 “이것이 독성물질이니 이 식물 또는 음식은 먹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이 맞는 얘기일까?
그렇다면 먹을 수 있는 식물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이 책에서도 ‘호르메시스’ 개념을 언급하고 있다. 식물의 독은 적으면 약, 많으면 독이라는 얘기다. 덧붙여 약과 독은 한 뿌리에서 나온다. 스위스 의학자 파라켈수스(독성학의 아버지라 불림)는 “독과 약은 쓰는 용량에 달렸다.”라고 했고, 독일의 약리학자 휴고슐츠는 이를 개념화하여 ‘호르메시스(Hormesis)’라 정의하였다.
식물의 독성은 건강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현재 항산화 효과에 의한 항암작용이 있는 대부분의 물질, 예를 들어 플라보노이드, 폴리페놀, 렉틴 등이 포함돼 있는데 이들 물질은 외부의 공격에 의한 방어물질이라 해서 모두 독성물질로 분류돼 있다.
현미와 통곡물 껍질 속에 있는 자기방어물질, 즉 렉틴은 항산화 작용에 의한 항암효과가 있음이 입증돼 있지만 이 책에서는 위염을 발생시키고 소화를 방해하는 나쁜 물질로 평가된다.
하지만 독일의 진화생물학자 리하르트 프리베는 “렉틴은 염증유발 요인보다 항암, 면역증강 등 긍정적인 역할이 크고 몸속의 독성물질을 배출하는 효과까지 있다.”며 통곡물을 옹호하고 있다.
렉틴 논란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들
결국 내 몸에 들어와서 약이 되고 독이 되느냐에 대한 부분은 해당 물질의 양과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식물에는 절대적인 약도, 절대적인 독도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렉틴 함량이 많은 쌀밥과 잡곡, 콩을 주식으로 하면서 호박과 오이, 가지나물을 상식하는 우리나라 사람이 렉틴의 함량이 적거나 없는 육식 중심의 서양식을 하는 사람들보다 건강하게 살지 못하는가?’하고 반문해 보았을 때 절대 그렇지 않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답은 되지 않을까?
그러니 특별한 건강상의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는 기존 자신의 밥상을 즐길 충분한 이유가 된다. 다만,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밥상을 바꿔 물질교정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공부와 연구가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미 문헌이나 보고서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적용하여 실험해 보는 것이 좋겠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먹어왔던 밥상과 생활습관으로 인해서 질병이 유발되었을 확률이 70% 이상은 될 것이기 때문이다.